김진명의 역사소설 ‘고구려’를 읽다보면 ‘구부'(소수림왕의 어린 시절 이름)가 여러 등장인물들에게 다음과 같이 농부와 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의견을 묻는 장면들이 나온다.
“소와 농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죽은 지 오래된 농부의 시체 곁을 황소 한 마리가 굶어 죽을 지경이 되도록 떠나지 않고 지키는 광경이었는데, 미물 주제에 인간보다 충직한 것이 고까워 온종일 매를 때렸는데도 그 녀석은 결코 떠나는 법이 없었습니다. 평생 제 주인의 채찍을 맞아가며 밭을 가는 것이 소라는 놈의 억울한 삶으로 압니다. 한데, 대체 어인 까닭으로 그 소는 주인이 죽고서도 곁을 떠나지 않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여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한다. 필자가 이 글을 읽으면서 관심을 가진 것은 농부의 죽음이라는 환경 변화로 인해 소가 변화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보다 주목한 것은 소가 그에 따른 변화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근래 들어, 우리 사회는 지나치리만큼 많은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문제 상황의 복잡성이나 자료의 양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증대되었고 증대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이러한 복잡성과 양의 증대는 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 면에서는 조금은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 한 마디로 우리의 교육의 변화는, 위 이야기의 소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민하며 주저앉아 있지는 않나 하는 걱정마저 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해야 할까? 우리의 아이들이 문제 상황의 복잡성과 자료의 양이 증대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필자는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첫째, 학생들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신장시켜야 한다. 목적에 적합한 자료를 수집하고 자료를 분해하고 분석하며, 보다 절차적이고 효율적인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사고 능력을 컴퓨팅사고력(Computational Thinking)이라고 한다. 컴퓨팅사고력은 지난해 7월 23일 SW중심사회 실현전략 보고회에서도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으며, 2015년 개정 예정인 교육과정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사고 능력으로, 미래사회의 핵심역량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학생들이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등의 컴퓨팅시스템을 활용한 문제해결을 체험해 보게 해야 한다. 단순히 첨단 ICT 기기를 활용한 교육 뿐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구현해 보는 공간으로서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 중 가장 좋은 도구가 코딩 또는 프로그래밍이다. 새로운 SW를 만드는 개발자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사고를 표현하고 실현하고 반성해 보는 경험을 해보게 해야 한다.
필자가 말한 이 두 가지가, 지난해 우리 교육계에서 화두로 언급된 소프트웨어 교육(이하 ‘SW교육’)이다. 물론 이러한 두 가지 사항이 SW교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체계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하나의 교과목으로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마치 수학이 여러 교과목에서 사용된다고 해서 수학과목을 없애고 여러 교과에서 다루자고 하는 주장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2017년, 2018년부터는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SW교육 중심으로 재편한 ‘정보’과목을 필수화하기로 정부에서는 발표하였다. 교육부에서는 2015년 중학교 신입생부터 SW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SW교육 운영지침’을 개발하여 보급할 예정으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으며, SW교육 연구학교 68개를 공모했다. 또한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SW교육 선도학교 136개를 선정하여 지원할 예정이며, 교원연수, 교재개발, 교사연구모임 지원 등을 통해 SW교육이 현장에 착근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한다. 삼성전자, 네이버 등 초중등 SW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도 국가의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재양성 차원에서 지원 방안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농부의 죽음이라는 변화에 대해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는 소의 모습이 아니라, 학생들이 능동성을 지닌 새로운 주체로서 미래를 가꾸어 나갈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 생각한다.
이환철 한국과학창의재단 컴퓨팅역량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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